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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요"(으)로 총 1,335건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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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사 없이 요절한 닮은 꼴 자매 왕비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위치한 파주삼릉(사적 205호)은 능 3개가 함께 있다고 해서 ‘파주삼릉’으로 알려져 있다. 공릉(恭陵)·순릉(順陵)·영릉(永陵)이 자리 잡고 있으므로 ‘공순영릉’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조선왕릉이 이곳에 처음 자리 잡은 것은 제8대 왕인 예종의 원비 장순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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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을 태워먹은 노비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효릉의 태실 - 이종호 제공 숙종 30년(1704) 효릉에 산달(너구리, 담비, 족제비를 칭함)이 나타나 수라간 구도(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자, 노복인 주명철이 불경하다 생각해 불을 지펴 연기를 내 잡으려다 그만 불이 붙어 능상까지 불이 번졌다. 왕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왕릉을 태워먹었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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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도하다 병 들어 사망한 왕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시간을 좀 되돌려보자. 25년간 세자 교육을 철저히 받은 인종은 30세 되던 해, 중종의 사망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뒤로는 업무를 처리하는데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고, 때로는 신하들이 올린 상소문에 대해 직접 글로 답변을 하기도 해, 보는 사람 누구나 탄복했다고 한다. 왕에 오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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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표독한 계모에도 孝를 다한 인종 - (주)동아사이언스 제공 효릉은 제12대 인종(1515~1545)와 인종비 인성왕후(1514~1577) 박씨 능이다. 인종은 희릉에 안장된 장경왕후의 맏아들로 1515년에 태어났는데, 생모가 인종을 낳은지 7일만에 사망해 문정왕후 윤씨의 손에서 자랐다. 1520년, 여섯 살의 나이에 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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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조 마지막 왕릉…죽어서도 홀대받은 王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재위 14년간 처음 3년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하고 그 뒤로 내내 김씨들의 세도정치에 눌려 왕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지만 국내외 정황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급변하고 있었다. 그의 재위 동안 이단시하던 천주교가 널리 퍼졌고, 동학마저 일어나는 등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 탐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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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령 묻혀있는 서삼릉의 비밀동아사이언스 l2013.04.30
- 서삼릉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처음 조성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은 원래 태종이 묻혀있는 헌릉 옆으로 택지가 결정됐다가 권력다툼 때문에 이 곳에 옮겨졌다. 이후 중종의 정릉(靖陵)이 자리를 잡았다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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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조는 못 오고 정성왕후만 묻힌 곳동아사이언스 l2013.04.29
- 영조의 첫번째 왕비, 정성왕후가 묻힌 홍릉 홍살문의 모습. - 이종호 제공 서오릉에서 장희빈 묘를 지나 창릉 방향으로 걷다가,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가면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1692~1757) 서씨의 홍릉이 나타난다.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3세에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 연잉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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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두 잡는 ‘종두법’, 조선에 늦게 상륙한 까닭동아사이언스 l2013.04.29
- 왼쪽부터 마과회통과 정약용의 묘. - 이종호 제공 인경왕후가 사망한 원인인 천연두는 과거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 간, 가장 독하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바이러스다. 천연두가 가장 무서운 질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은 사망률 때문도 있지만, 천연두를 앓고 난 사람의 모습이 매우 흉해진 탓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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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왕비동아사이언스 l2013.04.29
- 서오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익릉은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1661~1680) 김씨의 능이다. 인경왕후는 1670년 세자빈으로 간택돼 숙종이 즉위한 1674년, 그녀의 나이 14세에 왕비로 책봉됐다. 인경은 ‘인덕을 베풀고 정의를 행했으며 자나 깨나 항상 조심하고 가다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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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묫자리 잘못 써서 대가 끊겼다고?동아사이언스 l2013.04.29
- 예종은 2남 1녀를 낳았지만, 후대를 잇지 못했다. 큰 아들 인성대군은 일찍 죽었고, 제안대군과 현숙공주도 자손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안대군은 왕위 서열상 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야 했으나 4촌인 성종에게 자리를 뺏겼고,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는 등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했다. 그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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