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과학동아
"체결"(으)로 총 43건 검색되었습니다.
- [문화재]5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데 선사시대부터 고조선, 고구려.백제,신라,포스팅 l20151206
- 세운 태조 이성계부터 대한제국을 세운 고종황제까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정동은 7번이나 탐방하러 가본 것 같아요. 을사늑약이 체결된 현장인 중명전과 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기위해 파견한 이준,이위종,이상설 3인의 헤이그특사, 근대교육기관인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뿐만아니라 탑만 남은 아관파천이 일어난 러시아공사관도 볼 수 있었 ...
- @신민주 기자의 여름방학이야기 3탄 1905년 11월 17일에 우리 역사중 가장 억울한포스팅 l20150809
- 신민주 기자의 여름방학이야기 3탄 1905년 11월 17일에 우리 역사중 가장 억울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조약은 을사늑약 이었다. 그리고 3년후 1908년에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로 특사를 보낸 광무황제, 하지만 해이그 특사는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오늘 을사늑약의 슬픔을 잊기 위하여 오늘 중명전에 갔습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님께 ...
- 8월 7일 광복 70주년 고난을 넘어 미래로 취재를 중명전을 가져왔다. 중명전 2층 전시관포스팅 l20150808
- 러시아는 얼지않은 항구가 필요해서 조선을 도왔다 3을사조약이 체결된후 주변국은 그것에 반대할 수 없었는지? 이미 조약이 체결돼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주변국들이라도 어려울때 돕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조약을 막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엄청 재밌었다.다음에도 이런 활동이 있으면 꼭 할거다 ... ...
- 8월 7일 광복 70주년 고난을 넘어 미래로 취재를 중명전을 다녀왔다. 중명전 2층 전시관포스팅 l20150808
- 러시아는 얼지않은 항구가 필요해서 조선을 도왔다 3을사조약이 체결된후 주변국은 그것에 반대할 수 없었는지? 이미 조약이 체결돼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주변국들이라도 어려울때 돕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조약을 막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엄청 재밌었다.다음에도 이런 활동이 있으면 꼭 할거다 ... ...
- 8월 1일에 근대 문화유산 탐방에 갔었습니다. 오늘은 덕수궁을 돌아보며 맨토들의 설명을 들포스팅 l20150803
- 2층인데 화재후 보건할때 2층을 보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에서 돈이 많이 없어서랍니다. 그리고 중명전에 있는 을사늑약 체결문을 보았는데 고종황제의 옥새도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약들이 모두 어처구니도 없는 조약들 뿐이었습니다. 역사중에서 근대역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 그렇지않을까요 ... ...
- 빨간기와의 진실 빨간기와 줄까 회색기와 줄까~기사 l20141125
- 기와의 진실 1876년 조일 수호 조규 체결 이후에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인을 위한 집을 짓는 공사장 앞에서 일어난 공개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조선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일본은 억지로 통상수교를 맺게 시켰다. 왜냐하면 조선은 청나라와 러시아로 ...
- '궁'은 궁인데...너무 어려워요. 청소년 문화재 지킴이가 된 기자의 첫 단추 끼우기....기사 l20141111
-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 이래요. 덕수궁에는 을사늑약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 장소인 중명전을 볼 수 있어요. 창덕궁은 가장 오랜 기간 임금이 살았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궁궐이 탄 후 고종이 경복궁을 짓기 전까지 ‘정궁’ 역할을 했던 곳이래요. 창덕궁은 유네스코 ...
- 근대유산1번지기사 l20141108
-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중명전 중명전은 대한제국 선포 후, 덕수궁의 황실 도서관 / 서양식 건물로, 일본과 을사늑약(강제로 체결 된 조약)을 맺은 치욕의 역사도 가지고 있다. "을사늑약"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로 이준,이상설,이위종 을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였고, 일본의 철저한 방해로 탄원서만 제출하여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 ...
- 근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그 곳, 정동에 가다 정동 스탬프 투어기사 l20141102
- 덕수궁 화재가 일어난 1904년 고종은 이곳으로 거쳐를 옮겼다고 합니다. 그 후 1905년 을사늑약이 이 곳 중명전에서 강제로 체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중명전 안으로 들어가 김진형 연구원님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고 난 후에 정동 스탬프 투어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도장의 모양은 대한 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이었습니다. 오늘 ...
- 정동. 우리 역사의 생생함이 있는 곳. 다같이 돌자. 정동 한바퀴를 다녀와서기사 l20141102
- 멋집니다. 중명전 중명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입니다. 늑약은 강제로 체결된 조약 이라는 뜻입니다 조약체결의 주모자들과, 체결이 정당하지 않은 근거와 증언들을 듣고 볼 수 있습니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델란드 헤이그에 3명의 특사가 파견됩니다. 세명의 특사가 헤이그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회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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