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실록"(으)로 총 13건 검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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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사로 보는 세상] '두창'과 잉카 문명의 멸망...분분한 해석과 교훈2023.04.11
- 이들이 ‘종’과 ‘조’가 아닌 ‘군’으로 격하하는 명칭과 함께 당시의 기록을 왕조실록에 남겼으므로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에서는 대표적인 나쁜 임금 2명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와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 독립전쟁을 이끈 사령관으로 승리 후 초대 대통령에 오른 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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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환의 과학세상] 2년 전으로 되돌아간 방역시계2022.03.02
- 등 팬데믹의 종류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의 왕조실록에 따르면 한성은 2년마다 한 번씩 ‘역병’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역병의 정체도 알 수 없었고, 강압적인 봉쇄 이외에는 뾰족한 대책도 없었다. 그런 역병은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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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게시판] 제1기 인공지능 윤리 정책 포럼 출범식 外동아사이언스 l2022.02.25
- 주최한다. 대전일보는 ‘검은 호랑이해 우리나라 하늘 그리고 우주’를 주제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호랑이해 주요 천문현상을 소개한다.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은 이경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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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밝은 별 베텔게우스가 한때 빛 잃은 이유, 먼지구름 때문이었다동아사이언스 l2021.06.17
- 일어난 마지막 초신성은 1604년 일어난 케플러 초신성이다. 케플러 초신성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이 있다. 다만 베텔게우스가 언제 폭발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구 어디서나 베텔게우스의 마지막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학자들은 만에 하나 베텔게우스가 폭발하면 약 15일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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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도 황사가 있었다동아사이언스 l2021.03.17
- 자국이 남았다는 기록도 있다. 16세기 중반, 경성과 전라도 지방의 흙비 기록. 『명종실록』 10권, 1550년 3월 23일 기사. 국가기록원 제공 삼국사기를 보면 ‘우토’가 내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토는 흙비를 말하는데, 바람에 날려 올라갔던 모래흙이 비처럼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문헌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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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환의 과학세상]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 두려워할 이유 없다2020.05.13
- 당시 지구상의 인구는 3억을 넘지 못했다.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왕조실록에는 역병의 기록이 84회나 등장한다. 평균 6년마다 정체불명의 괴질이 돌았다는 뜻이다. 숙종 25년에는 25만 명이 죽었고, 영조 25년에는 60만 명, 26년에는 44만 명이 희생됐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는 1천 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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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언스N사피엔스]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2019.09.05
- 조선 임금의 비서실 역할을 했던 승정원에서 작성한 일기로 그 분량이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더 많아 아직도 번역이 진행 중이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완역까지 약 100년이 걸릴 거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이다. 일부에서는 아예 정부에 번역청을 신설하자고도 주장한다. 나는 찬성이다. 정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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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언스N사피엔스] 과학은 왜 어려운가2019.05.30
-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는데, 이때 나의 준비된 반문은 “조선왕조실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나요?”였다. 언젠가 지방 도서관에 강연하러 가서 이 주제로 얘기를 하던 중에 비슷한 예를 들려고 하다가 사도세자의 사례는 너무 심하다 싶어서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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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기의 과학카페] 객성과 신성과 초신성2017.09.05
- 맨눈으로는 결코 보일 일이 없는 백색왜성이 신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전 신성은 실록에 묘사된 것처럼 2주 정도 지나면 다시 사라진다. 한편 폭발력이 약해 밝기가 덜한 ‘왜소 신성(dwarf nova)’이 있다. 이 경우 최대 밝기가 평소보다 2~6등급 올라가는데 그치기 때문에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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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덕엔 대게, 부산 기장엔 미역!한국원자력문화재단 l2015.11.04
- 12세기 고려시대 때 미역을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동래현조(지금의 부산 기장 지역)에서 미역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도 ‘해채(미역)는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효능은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氣)가 뭉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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